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티베트 관계 (문단 편집) == [[티베트 독립운동]]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티베트 독립운동)] 2002년부터 2010년 사이에 약 7차례에 걸쳐 티베트 망명정부 측과 [[중국 정부]]간의 공식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다. 티베트 망명정부 측에서는 국가무신론 성향의 중국 정부 성향에 맞추어 티베트 정부는 정교분리가 이루어질 것이며, 완전한 분리독립 문제는 유보하고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였으나,[* 애초에 달라이 라마 14세의 롤 모델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 당시 온건파를 대표하던 성직자 [[데스몬드 투투]]였다.] '''중국 정부 측은 사실상 이러한 입장에 대한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였다.''' 이에 티베트 망명정부 내 강경파인 티베트 청년회 측은 달라이 라마 14세의 자치권 확대 노선을 비판하고, 직접적인 독립운동으로 방향을 선회할 것을 주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티베트 청년회의 주장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준비 당시 티베트 전역의 반중 봉기로 이어졌다.[[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65041|#]] 1989년 이후 평화적인 시위만 소극적으로 벌여왔던 티베트인들이 2008년 봉기에서는 한족과 [[회족]] 상인들을 구타하고 가게를 약탈하는 방식으로 갑자기 폭력적인 방식으로 반중 감정을 표출[[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278481.html|#]]하였던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봉기 자체는 티베트 불교 승려들의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나[[https://news.sbs.co.kr/amp/news.amp?news_id=N1000396304|#]] 시위가 급격히 폭력적인 방향으로 격화된 것은 티베트 망명정부 내 강경파의 영향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달라이 라마 14세가 온건파인 것과는 별개로, 티베트 독립운동 관련해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달라이 라마이다 보니 중국의 티베트 독립운동 때리기 역시 달라이 라마 14세 때리기에 집중되어 있다.[* 달라이 라마 14세의 해외 방문 관련하여 무척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중국 정부이지만, 달라이 라마를 제외한 티베트 망명정부 내 여타 인사들이 한국이나 남아공, 몽골 등을 방문하는 것에는 그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중국 내외의 친중국계 민간 단체에서는 티베트 망명 정부 및 티베트 독립운동의 아이콘 [[달라이 라마 14세]]를 Da"Lie" Lama라는 멸칭으로 비하 지칭하며, 서구권에서 티베트 인권 문제 관련하여 티베트인들이 시위를 벌일 때마다 어용 단체들을 동원하여 달라이 라마 14세를 비하하는 맞불시위를 놓는다. 물론 달라이 라마 14세가 완벽한 인간일리는 없으나[* 2023년 소년 성추행 관련해서 논란이 생기자 공식적으로 사과 성명을 발표한 바 있었다.] 과연 이런 시위에 참여하는 친중단체에서 달라이 라마 14세를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이유가 [[티베트 불교]]의 개혁이나 티베트의 발전과 [[티베트인]]의 인권 향상과 관련이 있을지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레비야 카디르]]를 대상으로 "위구르의 달라이 라마"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중국 정부 차원에서 달라이 라마라는 명칭을 오늘날의 중공 내에서 혐칭, 멸칭 수준으로 격하시키려는 운동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 익명을 요구한 한 쓰촨대학 한족 교수도 "국제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달라이 라마가 살아있기에 티베트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진 티베트인이 오늘날까지 일사불란한 시위를 벌일 수 있는 것은 달라이 라마가 절대적 지도자로 자신들을 이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며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한동안 티베트문제는 서구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략) >----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65041|#]] 달라이 라마 14세는 1935년생으로 이미 고령에 접어든 상태이다. 그리고 [[68운동]] 히피 문화가 유행하던 시절이면 몰라도 티베트 불교 겔룩빠 특유의 달라이 라마의 [[환생]] 관련한 교리나 계승권이 티베트 불교 신도가 아닌 여타 세계인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는 힘들다.[[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490316.html|#]] 중국 입장에서는 관영 언론에서 중국 인민들에게 달라이 라마를 때리는 방송만 주구장창 보내놓고, '''팔짱 끼고 달라이 라마가 늙어 죽을 때까지만 기다려도 유리한 상황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유리해졌다는 생각이 들자 티베트 망명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제안한 말을 전부 다 바꾸어 버렸다. 00년대 초반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을 완전 포기한다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발언했으며, 예샤오원 중국 국가종교국장도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독립을 포기한다는 견해를 명확히 밝히면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귀환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 때문에 달라이 라마 14세 역시 잠시나마 티베트인들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할 것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물론 오늘날 시진핑 정권에서 [[코로나 19]] 사태나 [[2021년 미얀마 쿠데타]] 당시 보여준 외교정책으로 보았을 때, 이런 약속을 신의 있게 지킬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